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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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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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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은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66회   작성일Date 12-06-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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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내역]
    광주(光州) 사람이다.1928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주의 사상에 공명한 그는 1931년 9월 이우적(李友狄)·송회갑(宋晦甲) 등과 교류하며 실천운동의 방안을 모색하였다.1931년 10월 하순 이우적의 지도로 송회갑 등과 함께 광주노동조합(光州勞動組合)을 결성하고 정미(精米)·철공(鐵工)·운수(運輸) 자유노동자 분야를 담당하여 동지획득과 교양사업에 주력하였다.또한 동년 11월 최창진(崔昌鎭)과 함께 동 조합의 기관지 〈노동자신문(勞動者新聞)〉을 제작·배포하여 항일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에 힘썼다.이어 그는 동년 12월 19일 이우적·송회갑·김기선(金琪善)·김영재(金永才)·김백동(金百東)·윤승현(尹昇鉉)·정시환(鄭時煥)·김준수(金俊琇) 등과 더불어 열성자대회(熱誠者大會)를 열고 사회주의 비밀결사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를 조직하였다.동회는 전남지역의 노동자·빈농(貧農)을 규합하여 혁명적 노동노합·농민조합을 조직하고 이와는 별도로 소부르조아·학생층을 중심으로 반제국주의동맹(反帝國主義同盟)을 결성하여 이를 통일적으로 지도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동회는 조직부 산하에 노동부·농민부·반제부(反帝部)와 정치부 산하에 재정부·출판부·교육부·조사부의 부서를 갖추었는데 김호선은 총책임 겸 조직부를 맡아 동회의 활동을 주도하였다.이후 동회는 기존의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을 흡수하고 조기원(趙琦元)을 통해 광주고등보통학교에 반제부의 세포반을 결성하는 등 조직확대에 힘썼다.김호선은 1932년 2월 윤승현·최창진 등과 함께 동회의 기관지인 〈전남노동자신문〉 150부와 학생뉴스 30부, 3·1독립운동 기념일에 배포할 격문 150매를 제작하여 배포를 준비하던 중 일경에 피체되었다.그는 1934년 11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註·판결문(1934. 11. 27 광주지방법원) ·동아일보(1934. 10. 30, 11. 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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