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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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巖) 사람이다.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7월 초순 전남 광주(光州) 소재 수피아여학교(須皮亞女學校) 뒷산에서 송동식(宋東植)·이신형(李信珩) 등의 학생들과 함께 사회과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회원을 4개반으로 편성하고 사회과학 이론의 학습과 항일의식의 함양에 힘썼다. 이어 동년 9월 중순 광주형무소(光州刑務所) 뒷산에서 모임을 갖고 조사선전부·조직교양부·재정부 등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한편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조직과의 연계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동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과 일본인 중학생 생도들간의 싸움으로 시작된 광주학생항일의거 시위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註·判決文(1930. 10. 18 光州地方法院) ·判決文(1931. 6. 13 大邱覆審法院)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分冊 721面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38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496·500·553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264·266·1611∼1624·1633∼1654·1667∼1709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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