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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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중 1929년 6월에 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 등 광주고보생 20여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하고 항일학생결사인 광주고보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동회는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학생결사였던 성진회(醒進會)가 해체된 후 확대 개편된 '독서중앙본부'의 하부조직으로 결성되었다.동회의 운영은 전회원을 5개조로 나누어 각각 연구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독서회 활동을 통하여 항일민족정신을 함양하였다.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고보생 가두시위에 참가 활약하였다.제1차 시위후 그는 동월 10일 제2차 시위의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박기석(朴己錫) 집에서 오쾌일(吳快一)·이신형(李信珩)·조길룡(曺吉龍) 등과 함께 모여 그에 따른 준비를 의논하였다. 그리하여 동월 11일에 그는 오쾌일·조길룡 등과 함께 거사당일에 필요한 격문을 인쇄하였다.거사 당일인 12일에는 전날 인쇄한 격문을 교내에 살포하고, 김삼석(金三錫)·송만수(宋萬洙) 등과 함께 광주고보생 가두시위 대열의 앞장에 서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경에 피체된 그는 광주고보에서 퇴학을 당하였으며, 1930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註·판결문(1930. 2. 26 광주지방법원) ·판결문(1930. 5. 15 대구복심법원) ·판결문(1930. 10. 18 광주지방법원)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17·720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9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40·247·251·264·929·1512∼1524·1633∼1654·1667∼17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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