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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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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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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박수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02회   작성일Date 12-06-14 09:50

    본문

    [활동내역]
    전남 영암(靈岩) 사람이다.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학생결사인 성진회(醒進會)회원으로 광주사범학교 3학년 재학중, 1927년 4월에 이동선(李東宣)·박무길(朴武吉) 등과 함께 민족차별 교육을 일삼던 일본인 교유(敎諭) 강전(江田)을 타교로 몰아내는데 앞장섰다. 그후 항일의식을 더욱 고취할 계획으로 1928년 3월에 있을 졸업을 앞두고 2학년생 최상호(崔相鎬)·김기주(金基柱)·강달모(姜達模) 등을 후계자로 선정하고 교내조직의 확대에 주력하였다. 한편 1927년 3월에 성진회가 형식상 해체된 후 주동학생들은 각급 학교 단위로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는데, 1928년 2월에 그는 최규창(崔圭昌)·문승수(文升洙) 등 각 학교 학생지도자 12인과 함께 광주군 서방면(瑞坊面) 두암리(斗岩里) 소재 지용수(池龍洙)의 집에 모여 졸업 후 항일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고, 앞으로 교직 등 사회에 나아가서도 성진회의 사업을 계속하기로 결의하였다. 동년 3월, 동교를 졸업한 그는 영암의 서창(西倉)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광주사범학교 독서회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성진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피체되었다. 피체 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으며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판결문(1930. 10. 27 광주지방법원)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기려수필 399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25·727면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6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1·497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65·1624∼1633·1654∼17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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