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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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1926년 11월 3일 왕재일(王在一)·장재성(張載性) 등이 중심되어 조국의 독립과 사회과학연구를 목적으로 항일학생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한 후 광주학생들은 항일의식은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때 광주사범학교에서도 교내활동이 활발하였다.당시 광주사범에 재학중이던 그는 졸업에 즈음한 1929년 3월에 동기생 및 후배들과 함께 광주시내 중국요리점 '연빈루'에서 모임을 갖고 졸업 후의 항일운동에 관한 방도를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졸업 후 교직에 나아가서도 재학생들과 긴밀한 연락을 맺으며 항일운동을 계속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졸업 후 그는 보통학교 훈도로 재직하면서 광주사범 독서회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 활동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피체 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10월에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으나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출옥 후, 1939년에 향리에 백수동국민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광복 후 1947년에는 제5대 교장으로 후세 교육에 이바지하였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판결문(1930. 10. 27 광주지방법원)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기려수필 399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25면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4권 28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104·491·498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65·1624∼1633·1654∼17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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